미국과 덴마크, 그린란드가 1951년부터 이어져 온 그린란드 방위체제를 대폭 개편하는 새로운 3자 협정에 서명했다. 이번 합의는 북극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접근권과 방위 인프라를 확대하는 동시에 그린란드의 자결권과 덴마크 왕국의 주권을 명시하고, NATO를 중심으로 한 북극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백악관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덴마크 및 그린란드 지도자들은 9월 22일 뉴욕에서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은 1951년 4월 체결된 미·덴마크 그린란드 방위협정과 이후 관련 합의를 개정·보완하는 형태로 마련됐다.
이번 협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미국의 그린란드 군사활동 확대다. 미국은 기존 피투픽 우주기지의 시설과 활동을 현대화하고 확대할 수 있게 됐으며, 남부 나르사르수아크와 동부의 메스터스비그에 새로운 방위구역을 설치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추가 방위구역 설치 가능성도 열어뒀다. 미국 군용기와 공공 선박, 군 병력 및 차량의 그린란드 내 이동과 접근 권한도 구체적으로 규정됐다. 협정에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인 '골든 돔'과 관련한 방위 활동 가능성도 명시됐다.
북극 지역에서 NATO의 역할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3국은 북극에서 NATO의 계획 수립과 군사적 존재, 훈련, 공동 정보수집 활동을 강화하는 방향에 동의했다. 덴마크 역시 육·해·공·우주 영역을 아우르는 다영역 방위 역량을 강화하고 북극 지역의 감시와 군사적 대응 능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는 러시아를 비롯한 비서방 국가들의 북극 지역 군사활동과 전략적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서방의 공동 방위체제를 강화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외국의 군사적 영향력과 전략적 투자에 대한 제한도 강화된다. 협정은 NATO 회원국이 아닌 국가가 그린란드에 군사시설을 설치하거나 지속적인 군사 주둔을 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또한 NATO 비회원국이나 EU 회원국이 아닌 국가의 투자자가 그린란드의 핵심 인프라와 자원 개발 등 민감한 분야에서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통제권이나 중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군사적 거점뿐 아니라 경제·자원 분야를 통한 전략적 영향력 확대까지 차단하려는 조치다.
그린란드의 지위와 권리에 관한 조항도 이번 협정의 중요한 부분이다. 협정은 덴마크 왕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국제법상 그린란드 주민의 자결권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활동 역시 그린란드 주민의 생활방식과 사냥·어업 등 전통적 활동을 최대한 존중하도록 규정했다. 아울러 미국의 방위시설과 관련된 물자·서비스 계약에서는 가능한 범위에서 그린란드 기업을 우선적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그린란드가 협정의 직접적인 당사자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과거 방위체제에서는 미국과 덴마크가 중심이었지만 이번 협정에서는 그린란드 정부가 별도의 당사자로 명시됐다. 그린란드 총리 옌스-프레데릭 닐센은 협정 체결 당시 그린란드가 미국과 서방 동맹의 확고한 파트너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상호 안보가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덴마크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 역시 이번 합의가 기존 1951년 협정보다 확대된 장기적 방위체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그린란드의 안보와 북미 대륙 방위를 위해 필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취지의 평가를 내놨다.
협정의 유효기간 역시 기존 체제와 차이가 있다. 새 협정에는 별도의 종료일이 설정되지 않았으며, 당사국 상호 동의가 있어야 개정할 수 있도록 했다. 향후 그린란드가 독립을 선택할 경우에도 협정의 안보 체제를 유지하는 장치가 마련됐다. 협정문은 독립 그린란드가 NATO에 잔류하거나 필요한 경우 가입 절차를 밟고, 기존 덴마크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협정은 서명 즉시 완전히 발효되는 것은 아니며, 덴마크와 그린란드에서 필요한 의회 절차가 완료됐다는 외교적 통보가 이뤄져야 발효된다.
이번 합의는 미국이 그린란드를 둘러싼 안보 문제에서 군사적 접근권을 확대하면서도 덴마크의 주권과 그린란드 주민의 자결권을 협정문에 함께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북극 항로와 군사적 가치, 천연자원 및 지정학적 중요성이 동시에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덴마크·그린란드가 방위 책임과 역할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북극 안보구도의 중요한 변화로 평가된다. 앞으로 실제 협정 발효와 추가 방위구역 설치, 미국의 군사 인프라 확대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가 북극 지역의 새로운 안보 질서를 가늠하는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