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옥은 『디카시와 철학』에서 디카시 이론의 철학적 기반으로 헤겔의 변증법을 호출한다. 이상옥은 디카시를 단순한 혼합 장르가 아닌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성립하는 예술 형식으로 규정하려 한다. 이 구간은 디카시를 사진과 텍스트의 결합을 넘어 철학적 예술로 정초하려는 핵심 장이다. 해당 논의는 변증법의 사유 구조를 전개하기보다는, 변증법의 어휘를 안정화한 설명 틀로 전환하는 데 머문다.
이상옥은 변증법을 “정–반–합의 운동”으로 요약하며, 이를 “자기 동일성의 부정과, 그 부정의 통합”(85쪽)으로 설명한다. 부정을 생성의 계기로 제시한다. 그는 “부정은 파괴가 아니라 형성”(86쪽)이라고 단정한다. 이 설명에서 부정을 이미 긍정의 내부에 배치한다. 부정이 개념을 흔들거나 지연시키는 힘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변증법은 긴장이 아닌 절차가 된다.
절대정신에 대한 설명에서도 동일한 경향이 나타난다. 이상옥은 절대정신을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자기의식을 완성한 정신”(86쪽)으로 정의한다. 이를 궁극적인 형식이라고 말한다. 이어 절대정신은 예술에서 감각적으로 드러나는 진리의 형식으로 전환한다. 이때 절대정신은 역사적 자기 전개의 과정이 아니다. 개별 예술 작품 안에서 실현하는 상태로 이해한다. 헤겔 철학에서 절대정신이 지니는 역사 철학적 무게는 개인 미학의 차원으로 축소한다.
이상옥은 이러한 설명을 디카시 이론으로 연결한다. 그는 디카시는 “사진 기호와 문자 기호라는 이질적 기호 체계로 동시에 발화하는 변증법적 예술 양식”(87쪽)이라고 말한다. 또한, 날시는 감각적 충동의 출발점으로, 사진 기호는 정의 자리로, 문자 기호는 반의 자리로 배치한다. 이 배치는 사전에 결정한다. 기호 간 충돌은 예정된 단계로만 존재한다. 과정은 열려 있지 않다.
사진 기호와 문자 기호의 관계 역시 조화의 언어로 설명한다. 사진은 언어를 교란하지 않는다. 언어는 사진을 해체하지 않는다. 기호 간의 비대칭이나 실패는 고려하지 않는다. 변증법적 운동은 상호 보완의 관계로 고정한다.
이러한 설명은 디카시를 완결된 형식으로 규정하는 진술에서 분명해진다. 변증법은 작품 내부에서 종결한다. 헤겔의 변증법에서 운동은 종결되지 않는다. 절대정신조차 역사 속에서 전개한다. 완성의 언어는 변증법의 시간성을 제거한다.
이상옥은 SNS 환경을 디카시의 확장 공간으로 설명한다. 그는 “디카시는 SNS를 통해 (…) 의미가 지속적으로 재생산‧갱신되는 열림 텍스트로 작동하며, (…) 개별 의식들과 상호 작용하며 보편적 자기 인식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구조적으로 일치한다.”(92쪽)고 주장한다. 여기서 변증법은 사회적 소통을 설명하는 은유로 사용한다. 댓글과 반응은 역사적 정신의 자기 전개가 아니다. 변증법은 개념이 아닌 수사적 장치이다.
이 구간에서 반복되는 문제는 부정의 삭제이다. 부정은 언제나 통합을 향한 단계로만 기능한다. 실패는 발생하지 않는다. 모순을 보존하지 않는다. 과정을 결과로 고정한다. 절대정신은 역사적 운동이 아니다. 감각적 체험의 이름이다.
결국, 『디카시와 철학』에서 헤겔의 변증법은 사유의 방법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론을 장식하는 정당화의 언어로 기능한다. 변증법의 핵심인 부정성과 시간성을 제거한다. 디카시 이론은 변증법을 호출함으로써 철학적 외피를 얻지만, 그 대가로 변증법 자체를 정지시킨다. 이 비정합은 해석의 차원이 아니다. 구조의 문제이다. 이 지점에서 디카시 이론의 철학적 토대는 더는 유지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변증법이 갈등과 부정의 운동이 아닌 조화의 언어로 오해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디카시 담론은 부정성을 제거한 채 긍정만을 취한다. 이는 변증법의 구조적 붕괴이다. 결과적으로 이론은 운동을 멈춘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